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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성운 SNS포스터 최종_유행가.jpg

EXHIBITION


Nebula

Jung Jaeho 
 

25 May - 11 June 2023

Art & Choi's, Seoul


안녕하세요. (주)리우션이 운영하는 이모먼트가 기획한 팝업,
정재호 작가의 <성운 Nebula>가 5월25일 부터 6월11일까지 한남동 아트앤초이스에서 열립니다.

정재호 작가는 한국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주제로 오래된 아파트나 건축물, 사라져 가는 장소와 사물을 사실적으로 그려 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중에서도 사물을 표현한 회화 작품만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오래된 앨범, 사진, 선풍기, 라디오와 같은 사물을 사실적이되 작가만의 서정적 분위기로 표현한 작품 약 15점이 전시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이모먼트 팝업] 
전시명: 정재호 <성운 Nebula>
전시기간: 2023. 5. 25(목) - 6. 11(일)
전시장소: 아트앤초이스 (용산구 이태원로45길 37 1층)
운영시간: 화-일 11:00 - 17:00 / 월요일, 공휴일 휴무
*별도의 주차장이 없습니다. 대중교통 이용을 권해드립니다. 
 
작가노트

성운(星雲) 

​정재호

 

나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으셨다. 눈도 점점 보이지 않게 되어 돌아가시기 전에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는 왜 이렇게 어둡냐는 말씀을 종종 하셨고 겨우 뜬 눈으로 희미하게 나를 알아보곤 하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한 앨범 속의 사진을 모두 꺼내서 버리셨다. 누렇게 바랜 앨범의 속지의 비닐 덮게 안에는 사진의 테두리만 흔적으로 남아있었고 버린 사진들은 찾지 못했다. 그 앨범은 처음 보는 것이었고 그 사진들이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알지 못한 채 잊고 있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업실의 책장에 꽂아두었던 그 앨범을 다시 보게 되었다. 비어있는 앨범을 한 장씩 넘기다가 남아있는 작은 흑백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바닷가의 바위 위에 앉아서 웃고 계셨다. 우연히 남아있게 된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지워버리기 싫었던 어떤 기억인지 알 수 없었고 갑자기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몰려와 아득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그 앨범을 곁으로 가져와서 그렸다. 작은 흑백사진은 앨범의 표지 위에 얹어놓았다. 사물들을 그동안 여러 번 그려왔었고, 가지고 있거나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사진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곁에 두고 그렸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앨범처럼 가까운 사물을 그린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진 속의 사물들을 그리는 것과 직접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진 속의 사물을 그리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사물이 아닌 사진을 그리는 것이다. 그 사진은 과거의 어떤 시간과 사건의 증거이며, 그것을 찍은 사진가의 해석이다. 그러나 사물을 직접 보고 그리게 되면 과거의 사건보다는 그 사물의 현존성에 주목하게 된다. 이리저리 사물을 옮겨서 구도를 잡고 조명을 맞추는 일에서부터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하여 그림을 완성하는 시간은 사물이 내어주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정확하게 그려내고자 하는 나의 의지로 채워지게 된다. 나는 사물을 찍은 사진가가 그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처럼 그림을 통해 그 사물에 관한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사물을 그리는 이유가 딱히 정해져 있기보다는 그야말로 ‘그 무엇’이, 단 하나의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어찌 보면 무한성 같은 것이 담기기를 바라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사물을 똑같이 묘사하려고 한다. 형태와 색을 살피고 모서리에 떨어지는 빛을 세심하게 다루어 재질감을 표현하고, 예리하거나 부드럽게 떨어지는 그림자를 그리고, 사물과 배경의 경계를 그리는 것을 통해 그 사물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물은 object로 번역되지만 나에게 ‘사물’이란 단어는 事物을 넘어서 私物이고 또 死物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부여 속에 무생물을 가리키는 광의의 개념으로서의 사물은 누군가가 쓰고 소유했던 물건이 되고 지금은 쓰이지 않아 버려진, 그러나 어떻게든 여기 남아있게 된 존재가 된다. 나는 그 존재에 대한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는 일이 그것을 밝히는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화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밖에 없다. 마치 누군가를 알기 위해 대화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그리는 시간을 통해 그 사물을 오래 보고 그것이 해주는 말을 상상하고 나의 말을 간신히 덧붙여 나가는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림을 통해 그 사물은 쓰임새가 없는 버려진 것에서 다시 오랫동안 볼 만한 것이 될 것이다.

어머니의 앨범을 그린 그림에선 ‘ALBUM’ 이라는 표지의 글자를 지웠다. 글자를 지우니 오래된 앨범의 표지의 모습이 온전히 나타나게 되었다. 헤진 천 재질과 얼룩과 일부러 털지 않은 먼지들. 한지에 회색과 청색의 물감으로 천천히 여러 번 겹쳐 칠해서 표면의 얼룩들을 그렸고 마지막으로 먼지들을 흰색 물감을 찍어서 그렸다. 그림 속 어머니의 사진이 마치 우주에 떠도는 성운(星雲)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성운은 별들의 잔해다. 한때 빛났던 별이 초신성이 되어 폭발하고 남은 잔해들은 성운이 되어 우주공간을 떠돌다가 아득한 시간이 흐르면 서로의 중력으로 다시 풍쳐 별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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